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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블록체인을 처음 이해하려고 한 밤

비트코인을 공부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뉴스에서, 유튜브에서, 그리고 SNS에서 떠들썩하게 들려오던 그 이름. ‘비트코인’. 남들이 다 얘기하니까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그 뒤에는 ‘블록체인’이라는 거대한 기술과 철학이 숨어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이상하게 그 세계에 자꾸 끌렸다.

[비트코인 일기 #2] 새벽 1시 출근, 쿠팡에서 일하며 비트코인 차트를 처음 봤던 날

 

그 무렵 나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헬퍼로 일하고 있었다. 출근 시간은 새벽 1시, 퇴근은 아침 8시 30분. 몸이 고단해도 일을 나가지 않으면 안 됐다. 자차로 출근하는 길은 늘 비슷했다. 시동을 걸면 차 안의 공기가 서서히 따뜻해지고,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이어지는 그 길 위를 달리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이 시간에 일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네.’ 그런 고요 속에서 문득문득 비트코인 생각이 떠올랐다.

 

‘은행이 없어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걸 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은 도대체 뭐지?’

 

운전대를 잡은 손끝이 묘하게 차가웠다. 음악 소리 대신 엔진 소리만 남았고, 그 소리가 내 머릿속의 의문과 뒤섞였다. 출근길의 어둠은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한 겹의 장막을 쳐놓은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센터에 도착하면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야 했다. 자동 분류 라인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박스들이 끝없이 밀려왔다. 지게차가 지나가고, 경적 소리가 섞이고, 사람들의 발소리와 박스 부딪히는 소리가 뒤엉켰다. 일하는 동안엔 머리가 비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단조로운 리듬 속에서 생각이 더 깊어진다.

 

‘블록체인이라는 건 결국 거래 기록을 묶어서 관리하는 구조라는데… 그게 그렇게 특별한 걸까?’
‘은행 서버도 거래 기록을 저장하잖아. 그런데 왜 그건 신뢰할 수 없고, 블록체인은 가능하다고 하는 걸까?’

 

그날따라 손은 자동으로 움직였지만, 머릿속은 계속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쉬는 시간에 구석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켰다. 손가락엔 먼지가 묻어 있었고, 손끝은 살짝 떨렸다. 검색창에 ‘블록체인이란’이라고 쳤다.

 

“모든 거래 정보를 담은 블록이 시간 순서대로 연결되어 있고, 한 번 기록되면 변경이 불가능하다.”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이상하게 머릿속이 맑아졌다. 마치 그동안 안개 속에 있던 문장의 의미가 서서히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모든 거래를 다 같이 기록한다는 거구나. 은행 혼자 관리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까 누가 조작할 수 없네.’

 

그 깨달음이 들자, 갑자기 등줄기를 타고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했다. 단순한 기술 설명이 아니라, 마치 세상의 신뢰 구조가 바뀌는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라인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눈앞의 일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내가 처리하는 박스 하나하나가 데이터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고, 한 사람의 실수가 전체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게 블록체인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가 임의로 데이터를 바꾸면, 전체 시스템이 그걸 감지하고 되돌려 놓는 구조. 마치 이 라인처럼, 모두가 함께 유지하는 질서.

 

일이 끝나고 퇴근할 때쯤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피로가 온몸을 짓눌렀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차 안에 앉아 시동을 걸자 라디오에서 아침 뉴스가 흘러나왔다. 세상은 이미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밤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도로에 차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붉은 햇살이 아파트 창문에 부딪혀 반사될 때마다 눈이 부셨다. 그런 풍경 속에서도 내 머릿속은 여전히 ‘블록체인’으로 가득했다. ‘이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신뢰를 다시 설계하는 시스템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예전에는 돈이란 단지 종이나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알게 된 후로는, 그 뒤에 깔린 ‘신뢰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돈은 결국 신뢰의 기록이고, 블록체인은 그 신뢰를 누구나 공유하게 만든 기술이었다.

 

집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유리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번졌다. 피곤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충만했다.
‘이게 내가 새벽 동안 얻은 깨달음이라면, 그만한 값은 하는 거겠지.’

 

그날 이후로 나는 블록체인을 단순한 기술로 보지 않았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
그리고 내가 몸으로 겪는 노동의 질서와도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는 서버를, 누군가는 데이터를,
그리고 누군가는 박스를 움직이며 세상을 유지한다.
그 모든 흐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그날 새벽, 나는 처음으로 실감했다.

 

💭 내가 느낀 점
그날 밤 이후, 블록체인은 내게 단순한 IT 용어가 아니었다.
일터에서의 반복된 노동 속에서도 ‘신뢰’와 ‘질서’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비트코인이라는 이름 뒤엔 단순한 돈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않아도 신뢰가 유지되는 구조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새벽 1시에 출근해서 아침 8시 30분에 퇴근하던
그 긴 밤 속에서 천천히 체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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